목록으로
뉴스
“공익제보인 줄 알았는데…” 불법 도박 계좌 모아 ‘통장협박’ 실태

보이스피싱 피해자 구제를 위한 계좌 지급정지 제도가 범죄자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최근 소셜미디어(SNS)에서 공익을 가장해 불법 도박사이트 계좌를 제보받은 뒤, 이를 ‘통장협박’에 악용하는 계정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사이트 계좌를 정지시킨 뒤 해제 협조를 빌미로 금품을 요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과정에서 도박으로 돈을 잃은 청소년들이 2차 범죄에 빠진 사례도 확인됐다.
#‘공익제보’ 내걸고 도박계좌 수집…지급정지 뒤 금품 요구해
최근 SNS를 통해 공익제보를 표방한 도박사이트 계좌 신고 홍보물이 퍼지고 있다. 청소년도박 근절을 위한 캠페인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통장협박을 통해 돈을 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제보자 제공
최근 SNS를 통해 공익제보를 표방한 도박사이트 계좌 신고 홍보물이 퍼지고 있다. 청소년도박 근절을 위한 캠페인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통장협박을 통해 돈을 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제보자 제공
7월 31일 일요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텔레그램과 인스타그램 등에는 ‘불법 도박사이트 계좌를 제보받는다’는 홍보물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이용자가 사설 토토·카지노 사이트에 접속해 충전용 입금 계좌번호와 예금주명을 제출하면 사례금을 주겠다는 방식이다.
언뜻 보기에는 불법도박 근절을 위한 공익 제보처럼 보인다. 실제로 일부 홍보계정은 ‘청소년 불법도박 근절 캠페인’ 같은 명칭을 내걸고 “당신의 용기 있는 제보가 깨끗한 세상을 만든다”며 제보를 독려했다. 신고 문턱도 낮췄다. “도박사이트 로그인 시도 없이 캡처본만 달라”거나 “24시간 언제든 제보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불법 사이트 근절 캠페인이 아니라 통장협박에 필요한 계좌 정보를 수집하는 통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수집된 계좌는 지급정지 절차를 악용하는 데 쓰였다. 제보 내용에 따르면, 통장협박범들은 이렇게 확보한 계좌에 이른바 ‘핑돈’을 보냈다. 핑돈은 보이스피싱 피해금을 뜻하는 은어다. 이들은 불법 도박사이트 계좌에 10만 원 안팎의 핑돈을 송금한 뒤, 해당 계좌가 보이스피싱 피해금 수취 계좌인 것처럼 허위 신고했다. 신고가 접수되면 금융회사가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해 즉시 해당 계좌를 지급정지시키기 때문이다.
통장협박팀이 도박사이트 운영자로 추정되는 이와 나눈 대화내역. 사진=제보자 제공
통장협박팀이 도박사이트 운영자로 추정되는 이와 나눈 대화내역. 사진=제보자 제공
도박사이트의 경우 회원들의 돈을 게임머니로 바꿔주고 환전해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입금이나 출금 계좌가 정지되면 돈의 흐름이 막히면서 운영에 곧바로 차질이 생기는 구조다.
계좌가 묶인 뒤에는 본격적으로 협박에 들어갔다. 이들은 지급이 정지된 계좌에 1원을 반복적으로 송금하면서 입금 내역 메모에 텔레그램 아이디나 협박 문구를 남겼다. 이후 지급정지 해제를 빌미로 금품을 요구했다.
일요신문은 이른바 ‘통협팀(통장협박팀)’이 계좌를 지급정지시킨 뒤 주고받은 텔레그램 대화 내역과 협박 메시지를 확보했다. 대화 내용을 보면 통협팀은 아직 돈이 입금되지 않았다며 상대를 재촉한 뒤 가족과 친인척, 해외선물 프로그램 관계자 등을 차례로 거론하며 수사기관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했다.
이들이 요구한 금액은 1000만 원이었다. 통협팀은 “숨겨놓은 돈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며 “한화 1000만 원 정도면 가진 자료를 소각하겠다”고 했다. 이어 “돈을 보내지 않을 경우 직장과 자녀의 학교·유치원에 해당 자료를 배포하겠다”며 “시간이 지나면 그다음부터는 협상이고 뭐고 없다”면서 압박했다.
통장협박팀이 협박한 계좌 내역 중 일부. 사진=제보자 제공
통장협박팀이 협박한 계좌 내역 중 일부. 사진=제보자 제공
통협팀이 관리한 것으로 보이는 계좌 장부도 있었다. 일요신문이 확보한 또 다른 자료에는 은행명, 예금주명, 금액, 입금 여부, 지급정지 상태로 보이는 내용이 날짜별로 적혀 있었다. 각 계좌 옆에는 ‘핑돈 입금으로 지급 정지’ 혹은 ‘입금 확인으로 해제’ 등의 메모도 확인할 수 있었다. 허위 신고로 계좌를 정지시키고 협박을 통해 돈을 받았다는 정황이다.
최근 통협팀의 표적이 일반 계좌에서 불법 도박사이트 계좌로 옮겨간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제보자 A 씨는 “초기에는 온라인 거래 과정에서 노출된 자영업자들의 계좌를 묶고 협박하는 사례도 많았다. 하지만 최근 통신사기피해환급법상 지급정지 이의제기 절차가 마련되면서 금융회사에 소명하면 비교적 빠르게 지급정지를 풀 수 있게 됐다”며 “협박범 입장에선 어차피 풀릴 계좌에 100만여 원을 써서 계좌를 묶을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불법 도박사이트 계좌는 사정이 다르다. A 씨는 “일반인은 경찰에 신고라도 할 수 있지만, 불법 도박사이트는 신고나 소명 절차를 밟기 어렵기 때문에 훨씬 큰돈을 받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차례 돈을 받는 데 그치지 않고 매달 상납금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 과거 통협팀에서 일해 본 적 있다고 밝힌 B 씨는 “업계에서는 이걸 ‘제휴’라고 하는데 매달 적게는 200만 원에서 많게는 700만 원까지 요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성인PC 운영방식 · 진상/신고 대처 방안 문의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